전시일정 : 2026년 6월 5일(금) - 2026년 7월 31일(금)
전시장소 : 갤러리마리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1길 35 마리빌딩)
관람정보 : 화수목금토 11시~19시 (매주 일~월요일 휴관) -
색으로 지은 기억의 집, 모든 것은 사라지고 그리움을 남긴다
종과 횡의 심플한 붓질로 서정적 추상작업을 보여주는 황찬수 작가는 색채를 통해 사라짐 이후의 시간을 붙잡는다. 자연 속에 남겨진 작은 인간의 흔적, 지나가 버린 계절의 온도, 어느 오후의 빛과 그림자, 여행지에서 문득 마주친 풍경의 감동은 작가의 내면을 통과하며 기억으로 침전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다시 색이 되어 화면 위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작가에게 회화는 눈앞의 풍경을 재현하는 일이 아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과 감정의 잔향을 불러내어 머물게 하는 일이며, 흩어진 기억들을 위한 하나의 거처를 짓는 과정이다.
자연스레 화면은 구체적인 장소를 묘사하기보다 기억이 머무는 심리적 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화폭 속 공간에서 색은 사물의 표면을 설명하는 기능을 넘어 감정의 온도와 시간의 깊이를 담아내는 언어가 된다.
자연은 작가의 작업에서 중요한 출발점이다. 숲 사이로 난 오솔길, 눈 위의 발자국, 바다 위의 배,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설산 아래 놓인 작은 집. 자연 속에 스며든 인간의 흔적들은 거대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시간을 환기시킨다.
작가는 이러한 풍경 속에서 단순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아쉬움, 그리움과 추억이 생성되는 지점을 발견한다.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공간은 실제 장소라기보다 기억이 응축된 장(場)이다. 작가가 말하듯 역사가 사실의 기록이라면 기억은 감정에 의해 편집된 개인의 역사이다.
화면 위의 색채들은 바로 그 개인적 역사의 흔적들이다. 겹쳐지고 덮어지고 지워지는 색의 층위들은 단순한 회화적 기법이 아니라 기억이 생성되고 퇴적되는 시간의 과정이 된다.
특히 작가는 색을 하나의 정서적 기후처럼 다룬다. 늦은 오후 4시 30분의 찬란한 햇빛,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의 경계, 숲 속의 습기 어린 공기, 여행지에서 느꼈던 낯선 설렘은 특정한 색의 관계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화면은 더 이상 평면이 아니라 관람자가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감각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색 공간에서 색은 하나의 감정을 지시하지 않는다. 어떤 이에게 푸른 색면은 잊고 있던 바다의 기억을 불러오고, 누군가에게는 지나간 사랑의 잔상을 떠올리게 한다. 화면은 작가의 기억에서 출발하지만 관람자의 기억과 만나며 비로소 완성된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하나의 이미지라기보다 서로 다른 삶들이 스며들 수 있는 열린 장소에 가깝다.
결국 작가가 지어 올리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기억의 집이다. 사라져 버렸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들,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선명해지는 순간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흔적들이 색채의 공간 속에 머문다.
관람객은 그 집을 방문하는 여행자다. 화면 앞에 멈춰 선 순간 문득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온다면, 그것은 오래전 잊고 있던 자신의 기억이 그곳에서 조용히 깨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구축한 색의 공간은 풍경을 보는 장소가 아니라 기억을 만나는 장소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각자의 시간과 다시 조우하게 된다. <갤러리마리 큐레이터>
순수한 기억의 가치를 생각하는 전시. 황찬수 전(展)
‘Space and Memory’라는 타이틀로 전시되는 이번 작품들은 가장 많이 읽혀진 서양미술사의 저자인 ‘곰브리치’의 유명한 말 “미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곱씹어 보게 하는 작품들이다.
이 말이 떠오르게 된 이유는 작가의 의식 흐름이 곧 작품인데 이 작품들을 감상하다보면 작가에게 더 집중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동기 부여가 된다.
화면에는 특별한 시각 정보가 담겨있지 않다. 기호도 상징도 없다. 그저 붓의 터치를 일률적으로 남긴 흔적들이 색의 율동으로 하나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단지 색이라는 조형요소와 시각 정보로 작품을 이끌어 가는 작가의 힘은 깊은 사색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도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작품을 감상하다가 다시 전시 타이틀을 떠올려본다. ‘공간과 기억’ 작가가 이 세상에 외치려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황찬수작가의 작가 노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있다. ‘감동과 영감은 도처에서 온다. 자연에서, 여행길에서, 일상에서 이들은 때론 강하게 때론 확실하진 않으나 잔잔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들은 간략한 에스키스나 글귀, 사진으로 저장되어 처음의 감동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된다. 나는 이들을 억지로 조합하거나 쥐어짜내려 하지 않고 내 몸 안에서 걸러져 자연스레 표출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무척 짧기도 하고 무척 길기도 하다. 나는 작업 중의 자유를 즐기기에 치밀하게 계획된 에스키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한 가지 주제에 매여 작업하기 보다는 이렇듯 도처에서 다가오는 자극과 감동, 영감, 새로운 경험을 자유로이 다룸으로써 내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다.’
이 글에서 보듯이 그의 글 속에는 자연과 환경, 상황을 자신의 감성으로 재해석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나타나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을 평론했던 전 대구미술관장 최승훈의 글에도 ‘그에겐 그림의 대상이 구체적인 사물이나 사건이 아니다. 단지 그림의 동기가 되는 조형충동이 일어나는 우연적 만남 즉, 작가가 만난 어느 시점에서의 정황이 출발점이 된다.
이 또한 직접 현장에서의 작업이 아닌 스케치나 사진 등의 기록에 의한 스튜디오작업을 하므로 순전히 기억에 의한 반추적 사유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즉흥적이고 격정적일 수 있는 현장에서의 일차적 심리상태는 시간을 여과하며 성찰의 과정을 거쳐 보다 정제되어 나타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그림은 만남의 정황에 대한 자신의 심적 반응을 담아내는 것이다. 순수한 감성적 반응이며 타고난 음악적 감흥에 의한 연주를 이루는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윗글은 작가가 '본다'는 1차적인 시각정보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자유인의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자유인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진전한 재해석의 깊이를 피력하고 있다. 그것은 자유인이 가진 순순한 사랑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장소나 상황에서 느낀 감동을 깊이 새겨 숙성된 자기만의 기억으로 풀어내는 것은 우리가 어릴 때 느꼈던 순수한 ‘짝사랑의 메커니즘’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느끼고 생각하고 기억하여 만들어진 어떤 형상은 더 이상 아름다울 수가 없다는 느낌으로 다가 올 수 밖에 없다. 황찬수는 이런 순수미의 매커니즘을 자신의 몸과 마음에 시간이라는 숙성 도구를 이용하여 풀어내는 것으로 보인다.
순수한 마음과 시간으로 숙성된 결과물의 향연인 이번 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생각을 작품을 통해 소통해보는 귀한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글: 한성대학교 전완식>
관람문의 : (02) 737-7600, 이메일 infogallerymarie@gmail.com
- 웹사이트 : gallerymarie.org
